[연재] "보이지 않던 돌봄을 목격하다"

총괄관리자
발행일 2023.05.05. 조회수 101

[얼룩소 정기연재 "벌거 벗은 남자들: 새로 쓰는 남성 섹슈얼리티"]
 
7화 <보이지 않던 돌봄을 목격하다>가 얼룩소에 업로드 되었습니다.
이번 주제는 "시선의 권력과 폭력"입니다. 많이많이 읽고 널리 공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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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태환의말
<보이지 않던 돌봄을 목격하다>
 
2020년 9월의 셋째 날,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의 얼굴이 새하얬다. 퇴근하고 집에 온 아버지는 주차장 계단을 오르는 순간 어지러움이 몰려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잠시 쉬고 왔다고 했다. 그리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거실 바닥에 고꾸라졌다. 형은 쓰러진 아버지를 일으켜 앉혔고, 나는 119에 전화를 걸었다. 구급 침대에 눕혀진 아버지는 아파트 1층에서 잠시 정신을 차렸다가 몇 마디 말을 하더니 다시 한번 의식을 잃었다. 인근 대학 병원 응급실에서는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손쓸 도리가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결국 지인의 지인을 통해 다른 대학 병원 응급실로 향했고, 아버지는 뇌출혈 수술을 무사히 받을 수 있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꼽으라면 아버지의 수술 이후 한 달이라 하겠다. 중환자실에 계셨던 아버지는 회복세가 좋아 일반 병실로 금방 내려왔다. 처음엔 기뻤지만, 그 뒤가 가시밭길이었다. 어떤 이를 돌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거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사의 기로를 가로지르는 때는 두려움으로 가득 차지만, 정작 생의 영역으로 돌아와 일상으로 회복하기까지 갖은 고생을 자진해 짊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 시간이 길면 길수록 돌보는 사람의 활력은 바닥을 향해 추락한다.
 
어머니는 그 바닥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 형제에게 간병인을 고용하는 대신 돌아가며 아버지를 돌보자고 했다. 형과 나는 교대로 저녁부터 새벽까지, 어머니는 매일 아침부터 낮까지 아버지 곁을 지켰다. 바로 그때 어머니의 돌봄을 목격했다. 아니 목격한 건 태어나는 순간부터였을 테니, 비로소 알아차렸다. 아버지에게 눈 한 번 못 떼는 시간이 지나면,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와 또 일을 했다. 이중 노동. 페미니즘 책에서 읽고 읽었던 그 이중 노동을 어머니가 하고 있었다.
 
페미니즘에서 말하는 이중 노동이란, 주로 집 밖의 임금노동과 집 안의 가사노동을 동시에 수행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물론 집의 안과 밖을 나누는 이분법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돌봄 노동을 수행하며 돈까지 벌어야 하는 여성들의 억압적 현실을 고발하는 용어로 주로 사용된다. 아버지와 함께 이불 가게를 운영하시던 어머니는 퇴근 후 집에서 가사노동까지 책임 진지 이미 오래였고, 아버지가 병상에 눕자 이제는 간병까지 해야 하는 다중 노동을 수행해야 했다. 병실에서 어머니의 돌봄 노동을 바라보며 나는 어렸을 적 어머니에게서 받았던 돌봄의 순간을 자연스레 떠올렸다.
 
(...)
 
* 얼룩소 정기연재 "벌거 벗은 남자들: 새로 쓰는 남성 섹슈얼리티"는 남함페 4명의 활동가가 번갈아가며 연재하고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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