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야한 걸 보는 게 잘못은 아닌데

총괄관리자
발행일 2023.05.24. 조회수 231

얼룩소 정기연재

야한 걸 보는 게 잘못은 아닌데

by 이가현

🔸  남자 못 버린 페미니즘 8화

 

 
 
나는 꽤 어릴 때부터 야한 컨텐츠를 접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쯤 엄마의 흑백휴대폰(배경이 연두색인 그것)을 야심한 밤에 몰래 가지고 나와서 폰이 뜨거워져서 만지기 어려울 때까지 ‘야설’을 봤다. 그걸 어떻게 찾아냈는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이불 속에 숨어서 연신 방향키를 아래로 누르면서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설을 독파했다. 내용은 잘 생각이 안 나지만 신음소리 같은 것이 텍스트로 묘사되어있었던 것 같다. 다음달에 엄마의 휴대폰비는 무려 10만원이 나왔다. 2000년이었으니까, 충격적인 금액이긴 했다. 그 이후로 다시는 엄마의 휴대폰으로 야설을 볼 수는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자 합법적으로 친구 집에 놀러갈 수 있게 되었다. 같은 동네에 살던 친구 집에 놀러가서 컴퓨터를 했다. 우리는 친구집에 놀러가면 그 시절 유행하던 ‘엽기토끼졸라맨’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플래시 만화도 보고 게임도 하고 간식도 먹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그 엽기토끼졸라맨 홈페이지였는지, 다른 홈페이지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어느 날 우리는 야한 애니메이션을 보게 되었다. 내용은 한 회사에서 일하는 엘리베이터 안내원과 그 회사의 회장 아들이 단둘이 엘리베이터에 갇히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었다. 나는 친구가 부모님의 주민번호를 자유자재로 이용하는 것을 보며 그 때부터 나도 부모님의 주민번호를 외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다.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 한 장면
 
그리고 대망의 5학년, 나는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보고 처음으로 자위를 하게 되었다. 김하늘이 권상우에게 영어수업을 하며 ‘동사’와 ‘정사’ 등 문법을 가르치는 내용이었는데, 김하늘이 정사를 다른 의미로 상상하면서 나왔던 장면이 인상깊었던 것 같다. 김하늘이 침대에 당황한 채로 누워 있고, 권상우가 허리띠를 풀고 침대에 채찍마냥 내리치면서 김하늘에게 ‘내 아를 낳아도’라는 멘트를 치고, 이내 권상우가 누워있는 김하늘의 발목을 잡아서 자기쪽으로 가까이 오도록 ‘박력있게’ 당기는 장면이었다. 나는 권상우가 김하늘의 발목을 잡아끌 때 ‘헉’하고 뭔가 느꼈던 것 같다. 부모님이 빌려온 비디오였는데, 엄마는 안방에서 자고 있었고, 나는 거실에서 그 장면을 계속해서 돌려봤다. 그리고 방에 들어가서 어렸을 때부터 갖고 놀던 동그란 나무 장난감을 꺼내서 대충 아랫도리에 문질렀다. 누가 자위하는 방법을 가르쳐준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그 장면을 떠올리며 여러번 시도한 끝에 생애 첫 성적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감각이 너무 생소하고 이상하고, 또 왠지 그걸 어떻게 느끼게 되었는지는 아무에게도 말 하면 안 될 거 같았다. 하지만 그 감각은 잊을 수 없어서 몰래몰래 자위를 실천했던 것이 벌써 20년이 되었다. 
   
2016년, 페미니스트 친구들에게 나의 자위스토리(!)를 꺼내기까지 나의 자위경험은 비밀이었다. 지금은 성교육도 하고, 섹슈얼리티에 대한 다양한 책도 읽으면서 좀 더 당당하게 이런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지만, 당연히 자위는 ‘딸딸이’로 불리는 남자애들의 전유물이었고 사실 내가 하는 것도 자위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던 것 같다. 이름을 불러줘야 의미를 가질텐데, 이름을 어떻게 불러야할지도 몰랐고 입밖으로 이야기하는 순간도 없었기에 나에게 자위는 그냥 ‘몰래 상상하면서 하는 야한 짓’ 정도였다.
 
예능 <마녀사냥>의 한 장면
 
어쨌든 시간은 흐르고 흘러 10년 전 쯤에는 ‘마녀사냥’처럼 성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 등장해 화제가 되었다. 그 때 나에게 마녀사냥은 남자 연예인들이 나와서 음담패설하면서 낄낄대는 이미지였다. 애초에 '마녀'는 여자다보니, 남자들이 모여 나쁜/섹시한 여자 잡으러 다니겠다 이런 의미로 들렸다. 패널들은 자기들끼리 즐거워 죽겠는데, 보고 있는 나는 뭐가 즐거운지 모르겠는 그런. 좀 같이 웃었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그리고 마녀사냥이 등장하고 나서 나는 첫 성관계를 하게 되었고, 자위를 할 때와는 다른 느낌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고등학교 때 물리 선생님이 ‘첫 성관계는 많이 아프다’고 말해주신 것이 퍼뜩 생각났다. 당시에는 ‘저런 말씀 안 하시던 분이 왜 저렇게 피곤한 얼굴로 갑자기 저런 말씀을 하실까’하는 생각만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감사한 인생수업(?)이었던 것도 같다. 
   
어린이 시절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성적인 콘텐츠들을 봐왔던 나지만, 그 오랜 시간동안 내가 본 콘텐츠들은 대부분 남자의 성과 쾌락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그렇다보니 꽤 오랜시간동안 타인과 하는 성관계가 아파도, 즐겁지 않아도 원래 그러려니 했다. 성관계란 무릇 여성에 대한 욕망을 실천하는 남성의 행위라는 것이 머릿속에 박혀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바꿀 수 있었던 계기는 역시 페미니즘이었다. 지금까지 나의 망한 섹스들은 그냥 여성의 만족과 쾌락에 별 관심이 없는 상대를 만났던 것 때문이로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기존의 여성을 대상화한 컨텐츠들이 불편해졌다. 왜냐하면 저렇게 하면 즐겁지 않다는 것을 이젠 내가 알아버렸으니 말이다. 
 
 
마녀사냥 2022 (출처: TVING)
 
섹슈얼리티를 다루면서 남자를 중심으로 다루지 않았던 프로그램은 지난 해 봤던 마녀사냥2022가 유일했던 것 같다. 패널부터 여남 동수로 구성되었고, 세대도 다양했다. 과거와는 많이 달라진 모습, 그리고 잘못된 정보는 바로바로 수정되는 모습에 작가들이 심기일전했구나, 작가들이 여성의 성적 권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그리고 마녀사냥2에 온 다양한 사례들을 접하고, 그 사례에서 대담하게 자신의 성적인 욕구를 표현하고 원하는 것을 얻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상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정도였다. 그래서 이렇게 성평등한 관점에서 성을 다룬 예능이 좀 더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넷플릭스에서 성시경과 신동엽을 엠씨로 성+인물이라는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한 나라에 가서 그 나라의 성문화와 관련된 인물을 인터뷰하는 예능프로그램이고, 첫 시즌은 일본편으로 총 6편으로 이루어져있다. 성+인물이 공개되자마자 신동엽이 동물농장을 하차해야 한다는 논란까지 등장했다. 기사에는 AV여배우의 연기 앞에서 귀가 빨개진 신동엽의 사진이 올라왔다. 궁금해졌다. 나도 이참에 좀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성교육을 하다보면 ‘성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에 종종 등장하는 것 중에 ‘일본’과 ‘성진국’을 말하는 학생들이 있다. 그만큼 일본이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성에 개방적이고 편안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나는 성+인물이라도 보면서 정말 일본이 성적으로 개방된 문화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다음 이야기는 '성욕이 인간 3대 욕구? 정말 그렇게 생각해?'로 이어집니다.)

성+인물 일본편 (출처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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