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국일보 젠더살롱 "자막·음성 지워도 '여성'은 지워질 수 없다"

총괄관리자
발행일 2023.05.05. 조회수 209
 
#활동가이한의말
 
미셸 여가 수많은 차별과 유리천장을 뚫고 오스카에서 아시안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습니다. 그 자체로 너무 대단하지만 함께 남긴 수상소감은 더더 감동이었는데요, SBS가 이를 임의로 편집하여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샀습니다. 이런 모습이 마냥 낯설지 않은 건 교육 현장에서도 비슷한 뉘앙스의 이야기가 계속 쏟아지기 때문입니다. 그게 마냥 일부 딴지거는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런 혐오에 편승하여 책임져아할 이들이 무책임으로 일관하여 발생하는 문제임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본문 일부와 원문 링크를 남깁니다! 편하게 읽고 많이 이야기나눠주세요!
 
원문 링크 [클릭!]
지난달 제95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미셸 여가 이 영화를 통해 아시아계 배우 최초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는데, 한 방송사가 그의 수상소감 중, "여성 여러분(And ladies)"이라는 메시지를 쏙 빼고 방송에 내보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편집은 미셸 여 수상소감 의미와 메시지를 왜곡하는 악의적이고 차별적인 편집이라며 강력하게 항의했고 해당 방송사는 논란이 커지자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며 부랴부랴 영상을 교체했다.
 
“왜 남성가족부는 없어요?”
이런 일련의 사태가 마냥 낯설지 않다. 강의를 하면서 '여성가족부', '여성긴급전화'와 같은 단어를 언급할 때면 나이를 불문하고 많은 남성들이 빠짐없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왜 꼭 '여성'이에요?"라는 볼멘 질문이다. 이 원한 섞인 질문은 곧 왜 남성가족부는 없냐는 하소연으로, 페미니즘이 아닌 '양성평등운동'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로 떠돌며 주변을 오래 괴롭혔다. ... 남성'도' 배제하지 말라는 메시지 자체는 제법 그럴싸해 보인다. 그러나 이런 목소리의 대부분이 실제로 남성 성폭력 피해자 지원이나 성차별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등장하는 게 아닌, 오직 '여성'이라는 단어에만 꽂혀서 '역차별'을 외치며 기존 시도에 훼방을 놓는 식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그 의도가 마냥 성평등을 이루고자 하는 게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 "왜 '흑인'인권운동과 '장애'인권운동일까요?" 흑인이 아닌 다른 인종의 인권은, 장애인이 아닌 비장애인의 인권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다만 역사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인종차별과 비장애인 중심주의 사회의 여파가 흑인, 장애인에게 가장 가혹하게 가해져 왔으며, 그것을 직시한 당사자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목소리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두루뭉술하게 '모두를 위한 인권운동'이 아닌, '흑인'인권운동, '장애'인권운동이라는 명칭이 여전히 필요하다. 이 명칭은 곧 운동 주체를 조명하고 동시에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를 드러내는 쉽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빛나는 미셸 여처럼
진짜 문제는 이들의 이러한 반감 그 자체가 아니라, 갈등을 회피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무책임하게 문제를 감추려 할 때 발생한다. ... 미셸 여 수상소감의 '여성들'이라는 표현은 더 중요하고 빠져서는 안 되는 의미가 있다. 바로 그 반감이 미셸 여에 앞선 수많은 여성 배우들이 좋은 배역을 맡는 데 어려움을 겪고 훌륭한 연기에도 수상을 하기 어려웠던 큰 이유이기 때문이며, 그럼에도 계속된 여성들의 노력과 시도가 반감을 뚫고 미셸 여를 그 수상 무대 위로 불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셸 여의 수상소감에서 '여성들'을 지우는 건, 그토록 어려운 환경에서도 계속해서 목소리 냈던 과거의 수많은 여성과 미셸 여를 보며 꿈을 키워 나갈 미래의 수많은 여성을 지우고 그 반감에 힘을 싣는 것이나 다름없다.
 
...더욱 착잡한 것은 이것이 비단 미셸 여의 수상소감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 전반에서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가고 있음에도 정치인들이 오히려 이러한 반감에 올라타 여성 지우기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당장 현 정권의 여성가족부를 향한 태도만 봐도 그렇다. 여성가족부가 사라지기는커녕 그 기능과 예산이 확대되어도 모자란 지경인데 여성가족부 예산 규모도 모르고 쏟아내는 혐오에 편승하여 여성가족부를 없애겠다고 하는 판국이다. 어디 그뿐일까, 매년 교육자료로 유용하게 써 왔던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은 '통계로 보는 남녀의 삶'이 됐고 지원사업, 정책명에서는 '여성'과 '젠더'가 사라지고 있다. 내용은 바뀌지 않았으니까, 좋은 게 좋은 거니까 하고 넘어가도 괜찮을까?
 
* 한국일보 젠더살롱은 남함페 이한 활동가가 한국일보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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