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성욕이 인간 3대 욕구? 정말 그렇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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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3-05-26 조회수 1169

얼룩소 정기연재

성욕이 인간 3대 욕구? 정말 그렇게 생각해?

by 이가현

🔸  남자 못 버린 페미니즘 9화

성인지적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개념이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란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여기에 ‘성인지’라는 말이 붙은 ‘성인지 미디어 리터러시’는 성인지 감수성을 가지고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이 관점에서 미디어는 미디어 제작자와 이용자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미디어 제작자는 본인이 만드는 미디어가 어떤 가치를 담고 있는지, 어떤 미디어 언어를 사용했는지, 어떤 이미지를 재현하고 있는지, 결과적으로 만들어진 미디어가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살펴야 한다. 미디어 이용자 또한 자신이 소비하는 미디어가 성차별이나 왜곡된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은지 살피며 미디어를 이용해야 한다.
   
내가 본 넷플릭스 성+인물 시리즈 일본편의 문제점은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 한국의 성문화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일본의 성문화를 찬양하는 것처럼 보인다.
  • 타국의 성문화를 심층적으로 탐구한다기보다는 MC 개인의 흥미와 가벼운 농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 남성들만의 시선에서 다뤄져서 여성들의 관점이 없다시피 하다.
  • 여성을 성적대상화하고 있으며 성차별적인 재현으로 잘못된 성 통념을 재생산한다.
 
결론적으로 성+인물 시리즈는 미디어 제작자가 가져야 할 성인지 감수성이 적용되지 않아 ‘성욕의 긍정’이라는 미명 아래에 기존의 성폭력을 옹호하는 통념을 재생산하고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를 옹호하는 콘텐츠가 되어 버렸다. 부분적으로 ‘성욕을 자연스러운 욕구로 인정하자’며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부분마저도 전체적 맥락에서는 ‘기존의 폭력적인 문화 재생산에 이용되었다’고 평가할만 했다.
   
이 시리즈는 총 6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1편은 성인용품점과 성인VR방 체험, 2편은 여성 AV배우들과의 인터뷰, 3편은 남성 AV배우와 남성 AV감독과의 인터뷰, 4편은 자위기구를 만드는 기업 텐가 탐방, 5편은 호스트 클럽 체험과 유명 호스트 인터뷰, 6편은 일본의 2030 청년들과의 인터뷰로 진행된다. 체험과 인터뷰는 모두 신동엽과 성시경 두 명의 남성 MC에 의해서 진행되었다. MC에 대해 말하자면, 특히 신동엽의 진행은 형편없었다. 그는 전 회차에 걸쳐 인터뷰이에게 시시껄렁한 음담패설에 가까운 질문과 농담을 이어갔기에 프로그램이 더 나아갈 수 있는 부분마저 차단해버렸다. 
   
“한국에는 이런 문화가 없어서...”
   
1편에서 MC들은 섹스토이샵을 탐방하며 ‘한국에는 이런 공간이나 문화가 없다’면서 마치 개방된 섹스토이샵이 일본에만 존재하는 것처럼 다루었다. 사실이 아니었다. 몇 년 전부터 내가 페미니즘의 수혜를 입고 여성의 성적 쾌락에 대한 긍정적인 관점을 갖게 된 후로 종종 들르던 곳이 바로 섹스토이샵이었다. 우연히도 그 즈음의 서울 곳곳에는 과거의 ‘성인용품점’과는 다른 분위기의 ‘섹스토이샵’들이 생겨났다. 다이소와 같은 통유리창 건물에 다양한 기구들이 전시되어 있고, 비슷한 연령대의 젊은 여성 점원에게 직접 친절한 설명을 듣고 여러 가지 용품들을 구매할 수 있는 곳들이 많아졌다. 게다가 온라인 섹스토이샵에서는 여성이 성적대상화된 사진이나 문구 없이도 꼼꼼하고 방대한 후기들을 통해서 정보를 공유하고 토이를 구매하는 문화가 이미 펼쳐진지 오래였다. 하지만 성+인물의 MC들은 그런 배경지식이 하나도 없었다. 이들은 마치 우리나라에는 개방된 섹스토이샵이 없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래퍼 퀸와사비가 섹스토이샵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각종 유튜브채널에서 입담을 펼쳤던 것도 엊그제같은데 말이다. 내가 이 지점이 불편했던 이유는 이렇게 일본의 섹스토이샵이 유일무이한 문화인 것처럼 다루면 마치 일본은 성에 대해 개방되고 긍정적인 인식이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는 인식이 퍼질 수 고, 그로 인해 일본의 AV나 호스트 클럽처럼 타인의 성을 착취하는 문화에 대해서도 긍정적이고 개방적인 성문화로 받아들여질까봐 우려되어서이다.
   
성인VR방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도 그들만의 특별한 성문화라고 느낄만한 것은 없없다. 성인VR방은 한국에서도 2017년 최초로 생겼고 유튜버들도 성인 VR콘텐츠를 체험하는 영상들이 올라왔었다. VR방이 있기 전에도 우리는 DVD방이나 비디오방에서 빨간 테두리의 패키지를 가진 성인 영화들을 볼 수 있었다. 일본과의 차이라면 실제 성관계장면을 촬영한 AV인지 아닌지와 규모의 차이밖에 없을 것이다. 조금만 검색해보면 해외에서 만들어진 VR 포르노를 다운받아서 국내에서 시청할 수 있는 방법도 금세 찾을 수 있다. 
   
하지만 MC들은 기어이 일본 성인VR방에서 직접 VR을 체험했다. 자신이 보고 있는 AV 영상이 어떤 구조를 거쳐서 자신들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지는 안중에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한 층 전체를 다 채우고 있는 AV비디오들을 보며, 이렇게 많은 영상들을 찍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수많은 사람들과 카메라 앞에서 성관계를 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많은 여성 배우들이 모자이크도 되지 않은 채로, 시시때때로 표정과 신체가 클로즈업되는 것을 견디면서, 감독의 OK사인이 떨어질 때까지 버텨야 했을까.
   
AV가 성범죄를 줄여준다고?
   
성인VR방 체험에 이어 AV 배우들의 인터뷰가 나왔다. 2편과 3편을 비교했는데 역시 여배우와 남배우를 다르게 소개했고 MC들의 질문도 달랐다. 남배우들은 평상복이나 세미 정장을 갖춰입고 나왔지만 여배우들은 미니드레스나 신체노출이 많이 된 옷을 입고 풀 메이크업을 했다. 게다가 성+인물 제작진은 여성 AV배우 세 명을 소개하는 자료사진들을 실제 AV장면이나 표지, 또는 성적대상화가 된 프로필 사진들을 사용했다. 남성 배우들은 자신의 섹시함을 어필하거나 자신의 본모습을 숨길 필요가 없었지만, 여성 배우들은 이 프로그램에서도 자신을 팔아야 했다.
   
그중 유독 마음에 걸렸던 장면은 한 여성 배우가 자신이 AV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이야기할 때였다. 한 AV감독이 18살이었던 자신을 스카웃하기 위해 1년 정도 따라다녔고 자기는 전혀 할 생각이 없었는데 그렇게까지 자신을 필요로 해준다면 해보자고 결심했다고 했다. 첫 촬영 때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성관계를 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아 울어버렸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싫다는 사람을 1년동안 따라다니면서 AV촬영을 제안하는 게 스토킹이고 성착취가 아니면 뭐란 말일까? 배우는 담담하게, 아무일도 아닌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그의 화려한 모습과 그가 말하는 내용은 뭔가 맞지 않아 보였다. 
   
물론 배우들은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것처럼 말했고, 각자의 캐릭터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이들은 그 캐릭터를 유지하느라 솔직한 이야기를 하기 어려워 보였다. 앞서 감독이 쫓아다녀서 시작하게 되었다던 여성 배우는 판타지를 이루어주는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자신이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NG)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일을 하지 않을 때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고 했다. 나는 그녀가 일을 하지 않을 때 어떤 사람이 될지 알 것만 같았다. 이들은 인터뷰에서 ‘AV는 사람들의 환상을 인정해주는 일’이며 ‘AV가 소수의 성욕구도 해소해주기 때문에 성범죄도 줄어든다’고 말했다. 인간의 3대 욕구는 식욕, 수면욕, 성욕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이 업계가 ‘클린하고 전문적이다’라고도 했다. 폭력인 부분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에피소드처럼 재현되었고, 그 이외에는 AV업계의 정당성과 전문성, 그리고 섹스에 대한 농담이 주를 이뤘다. 왜 여성배우들의 입으로 그 말들을 전달해야만 했을까. 
   
3편에는 남성 AV 배우 두 명과 남성 AV 감독 한 명이 나왔다. 그들과 MC들의 대화는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일단 비슷한 옷을 입고 있으니까 AV 배우들임에도 성적대상화가 되지 않았다. MC들은 남성 배우들에게 힘든 건 없냐고 물었고, 남성 배우들은 통계적으로 남성 배우들이 업계에 많이 남지 못하는 현실과 촬영장에서 겪는 어려움들을 아주 디테일하게 설명했다. MC들은 여성 배우들에게는 ‘얼마나 많이 찍었냐’고 질문했지만 남배우에게는 ‘얼마나 많은 여성을 상대했냐’고 물었다. 여성 배우와 똑같이 작업 수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여자랑 섹스해봤냐’에 대한 질문은 여성 배우들을 남성 배우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한 도구로 삼고, 그것으로 남성 배우의 남성성을 추켜올리는 미숙하고 성차별적인 질문이었다. 그 이후엔 누가 안면사정테크닉이 좋고, 누구는 여성향 포르노를 찍기 때문에 돈을 더 많이 벌고, 이런 다양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남배우들이 평소에 어떤 음식을 먹는지, 가족과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발기가 잘 되게 하기 위해 어떤 체조를 하고, 몸은 어떻게 관리하는지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배우들의 건강과 관련한 내용은 오로지 한 달에 한 번 성병 검사를 받는다는 이야기뿐이었는데 말이다.
   
남배우들은 AV의 주인공은 여배우라고 말하면서 도시락도 여배우들이 먼저 고른다고 푸념을 했다. 그러나 남배우들은 그런 도시락 선택권 하나도 '되도록 현장을 여배우에게 좋게 만들어서 이 업계로 오게 하는 것'이라 말하며 AV 산업을 위해 여성들을 AV 판에 더 많이, 더 오래 남아있도록 하는 전략이라는 말도 서슴없이 했다. 마치 남성들을 위해 ‘물관리’를 한다면서 여성들을 무료입장시키는 한국의 클럽들이 떠올랐다. 
   
남성 배우들의 인터뷰로 추론해볼 때 이들이 촬영하는 AV의 대부분은 여성 배우들의 얼굴에 사정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 같았다. ‘지인능욕’이라는 이름의 성적 합성과 합성물 유포, 합성물을 공유받은 가해자들이 합성물을 보고 자위를 한 뒤 화면 속 피해자의 얼굴 위에 정액을 뿌린 것을 다시 사진을 찍어 공유하는 디지털 성범죄의 기원이 여기에 있었다. 남성 배우들은 카메라 앞에서 사정을 할 때 ‘네 얼굴에 사정해도 돼?’라고 물어볼까? 여성 배우들이 얼굴 사정을 거부할 수 있을까? 그럴 리가 없다. AV는 애초에 합의와 동의가 성립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여성의 즐거움과 동의와 피임, 건강이 생략된 형태의 포르노가 양산되고 그것을 분별없이 소비하다보면 자신이 어떤 가해행위를 하고 있는지도 잊혀지기 마련이다. 과연 카메라 앞에서 얼굴에 사정을 받아내야 하는 여성들은 괜찮을까? 매번 얼굴에 정액을 맞아야 하는 것에 비해 남성 배우들이 여성 배우들에 밀려 도시락을 먼저 고르지 못하는 일이 정말 대수일까? 이상한 것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미치자 이 모든 게 거대한 속임수처럼 느껴졌다.
   
언제적 인간의 3대 욕구인가
   
여섯 편을 보는 내내 불편했던 것은 출연한 인물들이 매 편마다 ‘인간의 3대 욕구는 식욕, 수면욕, 성욕’이라는 언급을 하는 장면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메시지가 반복적으로 나온다는 것은 미디어 제작자 또한 해당 메시지에 동의하며, 동의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그 메시지를 여섯 편을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로 전달하는 데에는 합의했다는 것이다. 추측이 무색하게도 성+인물 PD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인간의 3대 욕구인 식욕, 수면욕, 성욕 중 성욕의 판타지를 구체화하는 데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물론 누군가에게 성욕이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통제하면 생명에 지장이 있는 식욕이나 수면욕과 성욕이 동일선상에서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 그랬을 때 이런 잘못된 통념을 악용해서 성폭력을 정당화하는 주장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봤다.
   
넷플릭스 성+인물 일본편은 일본의 성문화 중에서도 가진 것 없는 취약한 사람들이 AV나 호스트바와 같은 성산업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가리고, 마치 열심히만 일하면 ‘개천에서 용나는’ 부의 축적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처럼 미화했다. 그나마 텐가를 홍보하는 4편이 대상화하지 않는 자위기구, 성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낸 긍정적 사례로 볼 수 있었지만 어찌보면 텐가에 대한 홍보 그 뿐이었다. 1편에 등장한 성인VR방은 이용자에게 텐가 제품을 같이 팔고 있었다. 텐가가 아무리 성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고, 성적 대상화를 배제한 섹스토이라고 하더라도 텐가를 사용하는 주체가 증강현실을 통해서 보고 있는 것이 여성에 대한 극도의 성적 대상화와 착취가 이루어진 영상물이라면 과연 텐가의 목적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을까? 
   
성평등하면서 즐거운 성문화를 보고 싶다
   
성+인물 제작진이 보여준 일본은 개방되어 있는 게 아니라 뒤쳐져 있다. 무엇이 착취이고, 무엇이 즐겁고 안전한 성관계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AV산업 자체가 만들어내는 여성에 대한 성적대상화와 착취를 ‘판타지를 지켜주는 것’과 ‘성범죄를 줄인다’는 말로 포장한다. 한 해에 몇 십억을 버는 AV배우와 호스트들은 다루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경제사정이 어려워져 길거리 성매매에 나서야 하는 일본 여성들의 이야기는 다루지 않는다. 나는 미투운동과 버닝썬사건, 텔레그램N번방 사건을 거친 한국이었다면 용납할 수 없었을 일본의 폭력적인 성문화들을 보여주면서 마치 ‘이게 진짜 개방적이고 즐거운 성문화야’라고 주입하며 그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텐가의 이념을 가져다쓴 제작진에게 괘씸함을 느낀다. 아무리 퇴행의 시대라고 해도 그렇지 시간은 거꾸로 가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 성+인물은 대만편이 나온다고 한다. 성소수자 문화를 다룬다고 하는데, 지켜봐야겠다. 그리고 MC는 여성 패널을 추가하든지 신동엽을 교체하면 좋겠다. 우리가 궁금한 건 타국의 성문화이지 인터뷰랍시고 타국 사람들을 당황시키는 음담패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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